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르트 왕조 (문단 편집) == 역사 == [[구르 제국]]의 샨사바니 왕실의 방계가 세운 국가로, [[호라즘 왕조]]의 번국이었다가 [[몽골 제국]]이 침공해오자 --현명하게도-- 항복하여 [[일 칸국]]의 번국이 되었다. 1335년에 일 칸국의 분열 후 독립했고 토가 테무르의 칸 계승을 지지했다. 지도자 무이즈 웃딘 후세인은 1342년에 자바 전투에서 사르바다르 인을 격파했고, [[차가타이 칸국]]과도 여러차례 승리를 거두었다. 참고로 이 즈음에 청년 [[티무르]]가 카르트 왕조에 몸을 의탁했다. 그 후 세력이 불자 무이즈 웃딘은 1349년에 술탄을 선언했고, 토가 테무르와의 관계를 끊었다. 결국 토가 테무르는 1353년에 사르바다르 인에게 살해되었다. 1358년에 카자간이 이끈 차가타이 칸국의 대군이 헤라트를 포위하여 위기에 이르렀지만, 진중에서 그가 암살되고 칸국이 분열을 시작하여 기사회생 했다. 1362년에는 사르바다르 인의 침입도 재차 격퇴해내었다. 그 후 카르트 조의 군대가 티무르의 영역을 공격하면서 --통수-- 좋던 관계가 나빠지는 계기가 되었다. --사망 플래그-- 그러나 1370년, 무이즈가 죽자 아들들(기야스, 무함마드)에 의하여 왕국은 두쪽났고, 둘은 [[트란스옥시아나]]의 패권을 차지해 나가던 티무르에게 개입을 요청했다. --사망 플래그-- 티무르는 1376년, 사마르칸트에서 둘의 화합을 다지는 연회까지 주최해 주었으나, 기야스가 기어코 무함마드를 살해하자, 못마땅하게 여긴 티무르는 그의 불패의 군대를 이끌고 헤라트로 진군했다. 티무르가 [[모굴리스탄 칸국]] 원정에서 저지른 학살에 대한 소문을 익히 들은 주민들은 몇시간 정도 농성하다가 --최소한의 예의?-- 쇠퇴의 길로 들어선 카르트 왕조를 배반하고 성문을 열어재꼈다. --사망 플래그 분쇄-- 그렇게 카르트 조는 [[티무르 제국]]에게 비교적 평화적으로 멸망에 이르렀고, 이 원정은 티무르의 페르시아 정복의 첫걸음이 되었다. 그리고 헤라트의 학자들은 사마르칸트로 이송되어 티무르 르네상스의 발판이 되었고, 헤라트 자체도 티무르 제국의 제2의 수도 쯤으로 여겨져 크게 번영했다. 하지만 카르트 왕실 중 일부가 봉기를 일으켰다가 1396년, 티무르의 아들 미란 샤의 연회에서 숙청되며 대가 끊기고 말았다. [[분류:서아시아사]] [[분류:아시아의 아미르국]] [[분류:역사적 이슬람 국가]] [[분류:14세기 멸망]]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